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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아 에벌리 -> 유니 스칼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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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끼어들지도 못할 과거의 회상을 굳이 방해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뒤이어 들려오는 물음에 예상하지 못한 듯이 두 눈만 끔벅인다. '나?'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기억에 두지 않아, 벌써 흐릿한 보육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온화한 선생님, 제 또래의 아이들... 무슨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건지 항상 떠들썩한 분위기. 삼삼오오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 하나 없이 겉돌았으니,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어차피 떠나갈 곳이었는데, 기억할 만한 추억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있나? 난 SSS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이곳을 준비하느라 늘 바빴으니까. 누군가를 만나서 내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그럴 가치도 못 느끼겠고."
그러고 보니 어느 날에는, 한 선생님이 다가와 친구를 사귀어보라 말을 걸었던가... 그러나 이런 쓸모없는 내용은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낸다. 애초에 비협조적인 데다가, 타인에게 진심을 말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그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네 말을 만족스러운 낯으로 듣고 있는데... 또다시 말끝이 흐려지자 한쪽 눈썹이 올라간다.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할까, 한 번 들어보는데.... 뭐?
"네가 날 평소에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하루아침에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는 않거든?"
어이없다는 듯 쏘아보며 내놓는 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아지면 칭찬 정도는 해주겠지.' 따위의 말이나 덧붙이고. 무슨 그런 걸 묻냐는 듯한, 질책을 담은 얼굴로 너를 바라보고...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난 지금 배우는 내용 중에 모르는 거 없어. 있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혼자 알아내니까. 네 도움 따위 필요 없다는 소리야. 고민? 넌 내가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니?"
허둥지둥, 정돈되지 않은 답이었지만, '보람이 있도록 노력한다', 라는 말은 마음에 들었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으니 뭐 하나 알려주면 알아서 기억하고 받아내겠지... 하고. 물어보라는 말에 픽 웃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다. 어째 그 모습 꽤... 재수가 없어 보일 수도 있고...
하지만 실제로, 현재의 그에게 고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만약에 나중에... 아주 나중에... 생기게 된다면 털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 말 못 믿어? 네 얼굴에 그 상처는 언제쯤 사라질까 궁금해질 정도라니까."
붉게 물드는 얼굴 빤히 바라보다 입가에 작은 웃음이 걸린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순진한 모습에 비웃음 반, 정말 그 정도로 넘어질 뻔한 적이 있단 소리야? 하고 당황스러움 반.
"난 그런 문화가 있는 줄도 몰랐어. 실제로 주고받는 애들이 있다고? 너도 주고받고 그랬어? ... ....넌 참 멋지다는 말 자주 해."
같은 인형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지, 여러 개 사서 주고받는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본인의 인형을 선물해 준다는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건지... 얼굴 찡그리다가도 너의 장황한 말 뒤로 따라붙는 칭찬 한마디에 또 풀어지는 것이다. 본래의 순한 얼굴이 살짝 드러난다.
"멋지네. 그것도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반한 내용인 걸까. 네가 무슨 장비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졌어, 한 번 다양하게 도전해 봐. 그리고 누구나 그런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을까. 당장 나도 내가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중인데. ...무슨 생각해?"
딱 보기에도 '다른 생각 하고 있어요.' 하는 표정에 왜인지 불만스러운 기분이 들고, 고개 기울이며 네 얼굴 똑바로 응시한다.___
무감각한 얼굴로 어수선해 보이는 네 표정과 몸짓을 지켜본다. 다들 그러더라, 친구가 없다고 하면 꼭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혹은 불쌍한 아이 보듯이. 딱 듣기에도 바람직하고, 그래서 흔해빠진 '사람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이유'를 대충 들어주다가...
우리, 친구..할래요?
할 말을 잃은 듯한 느낌에 잠시 입이 다물어진다. 갑자기? 아니, 물론 네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러니까, 왜.
왜 사람들은 주위에 누군가를 두지 못해서 안달이지? 친구니 가족이니, 그들이 느낀다는 유대감을 느껴본 적도, 그래서 이해해 본 적도 없었다.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혼자서 해낼 자신이 있는데. 의무로 맺어진 팀이 있다고 해도 적당히 응대만 해주면 될텐데. ...사실, 어떠한 핑계를 댄다 한들 그저 회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현재의 그는 인지하지 못한다. 한 번도 제대로 사귀어본 적 없는 관계를 다가가는 법도, 받아들이는 법도 모르니까.
....
"내가 왜?"
침묵 끝에 나온 짤막한 답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구겨진 인상으로 질색하듯 말하는 꼴이 친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말을 내뱉고 네 표정 슬쩍 살피는 것이었나.
그 순간, 아주 뒤늦은 때였지만... 꼬옥 잡고 있는 네 두 손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꼭 내가 매정한 사람 같잖아.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이 너와 똑같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저쪽이 더 나을지도......
네 시선 피하며 침묵한다. 충동적이긴 해도 예외를 만들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충동? 아니 사실은, 나도 조금은...
책상에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