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悔
🦊 길잃은 방랑자 -> 아가레스
무릎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로 널 쳐다본다. 얼굴의 이곳저곳, 유심히 훑어내리는 것이... 꼭, 관찰한다는 느낌이 언뜻 들 수도 있고. 일부러 한참을 그러고 있었나, 픽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 음~ 역시, 바꾸진 않을래. 뭔가 이상하잖아? 생긴 걸로 보면 나랑 크게 차이 나지도 않아 보이고. 아가레스도 나한테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것보단 이름이 낫지 않겠어?"
사실, 무슨 가치가 있냐 묻는다면 제대로 답하지 못했겠으나.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심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친절하지도 않고 오만하고. 세상 혼자 다 산 것처럼 모든 것에 부정적이던 네가, 제 분수를 아는 것처럼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 살짝... 마음에 안들었나보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당연히. 이제껏 너를 향한 시선이 돌아간 적은, 손에 꼽는 수준이었으니까. 단지 네가 제대로 봐주길 기다렸을 뿐이지.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봐주려나, 괜히 속으로 초를 세어보기도 하고... 너 따라 눈을 깜빡이기도 하고. ...결국 먼저 정적을 깨버린 건 이쪽이었다. 이젠 질리도록 봤을 법한 웃는 낯. 아까의 대화를 끄집어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나 덧붙인다.
후회야 하고 있지. 괜한 말을 해서는...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일주일씩이나 못 보면 서운하지 않나. ...너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여기는 그렇다! ... 다행히도 추가는 하지 않는다는데,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뒤에 딸려 오는 말에 사그리 사라진다. 본인은 뭐 그리 잘났다고. 세상 모든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네가 불만이었다. 이 기회에 정말, 찾아내서 코를 납작하게 해버려야지. ...따위의 마음가짐을 하며, 네게 다시 집중하는데...
"... 아가레스."
방금, 웃었나?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 순간 저도 모르게 표정이 멍해진다. 뭐야. 웃으니까 훨씬 더... 보기 좋잖아. 너한테도 알려줄까. 복잡한 얼굴로 여러 생각이 스치다가 무언가 탁- 풀린 듯, 옅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니야." 역시, 말 안 해줄래. 너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이런 건 나만 아는 비밀로 남겨둘 거야.
"나 같다는 건 또 무슨 말이래. ...진심이야?"
무슨 뜻이냐며 흘겨보려다가... 툭 뱉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인다. 잠깐의 침묵. 네게서 놀라운 모습이 연달아 보이니, 혹시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제 오른쪽 볼을 죽 잡아당긴다. ... "같이 가준다면. 어디든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후회할 일은 없다. 단순한 가벼운 마음으로 네게 물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듣다 보면 너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꼭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가 지금은 꽤 덤덤해진 것 같아. 내용에 비해 힘든 기색도 안 보이고, 상처받은 마음이 굳어지면 안 되는 법인데. 혼혈일 줄은 몰랐어. 내가 용족 보는 눈이 별로 없어서~ (...농담이었을까? 헤헹 웃는다.) ...그럼. 한쪽 눈도, 한쪽 뿔도 그때 상처 입었던 거네."
그리 말하고 뜸 들인다. 네게 할 말을 고르는 듯이, 눈을 내리깐 채.. 시간만 보내다 도로 너를 마주한다.
"난 용족이 아니니까. 이런 말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고작 혼혈이고 약하다는 이유로 그 정도의 괴롭힘을 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야. ..... ...그냥, 힘들었겠다고."
네가 달가워하지 않는 모험가의 말 따위, 얼마나 와 닿을지는 몰라도. 이런 얘기는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고민한다. 더 궁금한 거라...
왜 그랬을까.
사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생소한 인물이 나타난 것도 아니었어. 그래도 네가 왜... 그렇게까지 행동했는지 알고 싶어. 이젠 물어도 답해줄 사람은 없지만.
네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겠어. 성가신 모험가들 발목이나 잡으려다 되레 당한 꼴이 퍽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어땠어? 그때 의식은 있었잖아. 마지막 순간에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지 고려해 본 적은 있어? 그럴 필요조차 못 느꼈다고 답할까.
대화를 할 사이는 아니라고도 했던가. 지금껏 가까워지려 노력했던 내 행동이 얼마나 우스웠겠어.
지켜봐 줬으면 해. 그 보잘것없는 세상, 구해낼 테니까. 어디 한 번 또 망가지는지 구경이나 해보라지.
...
네 말이 맞아. 애초부터 내가 이길 수 없는 내기였어.
최소한 닿을 수 있는 곳에는 있어 줬어야지.
... 그래. 네가 이겼어.
이제 만족해?